파라과이 선교서신 제20신

선교서신은 그 어느 노벨문학상 수상작보다 더 소중한 ‘문학장르’

선교서신파라과이

3/27/20191 min read

‘저는 선교서신을 이렇게 씁니다.’

지금까지 선교서신을 쓰면서 언젠가는 선교서신에 대한 저의 생각을 꼭 한번 정도는 언급하고 싶었습니다. 신학교에서 수년동안 선교학을 가르치면서도 선교사가 선교현장에서 어떻게 선교서신을 쓸 것인가를 한번도 고민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잘 못된 것입니다. 저는 선교서신을 다음의 5가지 원칙으로 쓰고 있음을 밝힙니다.

  1. 첫째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진실하게 씁니다. 정직한 글은 그 자체로 감동을 줍니다. 과장된 글이 많고, 신뢰성이 안가는 함량미달의 그런 글이 아닌, 신약성경 바울서신 같이 거짓이 없는 선교서신을 쓰려고 노력합니다.

  2. 둘째는, 읽는 독자를 배려하여 평이하면서 쉽게 ‘읽히는 글’을 씁니다. 자신의 사정만 일방적으로 보고하는 것은 선교보고이지 결코 선교서신이 아닙니다. ‘들리는 설교’에 우리가 귀 기울이듯이, 선교서신도 술술 읽히는 서신이어야 합니다. 현장의 선교사는 후원하는 독자를 의식해야 합니다. 바울서신은 심오하지만 결코 어려운 선교서신이 아닙니다.

  3. 셋째, 감동이 있고 재미있는 글이어야 합니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현대인은 저마다 감동과 재미를 쫓습니다. 선교서신도 매 서신마다 적어도 1-2 포인트는 독자들에게 은근한 감동을 주는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 웬만한 담임목사의 책상 위에는 안 읽은 선교서신들이 쌓여 있습니다. 재미도 감동도 없는 선교서신은 전적으로 선교사인 저의 책임입니다. (저는 선교서신을 쓰기 위해서 오랜 시간 기도로 먼저 준비합니다. 목회자인 경우에 제 선교서신을 읽은 후 설교의 예화로 사용되길 원합니다.)

  4. 넷째, 선교서신을 읽기만 해도 기도의 자리로 이끄는 선교서신 이어야 합니다. 어떤 서신은 끝머리 부분에 3-4가지 기도포인트를 나열하여 독자에게 은근한 압력(?)을 줍니다. 저는 제 선교서신을 읽는 중에 기도의 자리로 자연스럽게 이끄는 그런 서신을 쓰려고 노력합니다. 때로는 교회당 건물과 프로젝트 등을 제시하며 읽은 후에 단돈 1만원이라도 후원하지 않으면 죄 짓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하는 것 그런 서신들을 봅니다. ‘재정청구서 선교서신’은 지양해야 합니다.

  5. 끝으로, 모든 선교서신은 하나님의 나라의 비전을 생각하게 하고, 우리의 시선을 더 넓은 세계로 인도하며 ‘세계를 품은 그리스도인’의 자리로 이끌어야 합니다. 여기서 사도행전과 바울의 선교서신이 우리의 좋은 모델이 됩니다. 실제로 바울은 곳곳에서 우리로하여금 자신을 본받으라고 권면합니다. (살전1:6, 2:14, 살후3:9) 노벨문학상의 영예가 얼마나 대단합니까? 그러나 그런 세계적인 노벨상 수상자, 시인, 소설가도 선교서신은 쓸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습니다. 선교서신은 오직 현장의 선교사의 뜨거운 심령과 땀과 눈물로 쓰는 오늘의 사도행전 29장의 글쓰기입니다. 이런 영광스러운 선교서신의 비밀을 많은 동료 선교사들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배안호 선교사의 선교서신이 어떻게 한인신문에 연재되고 있어요?”

파라과이 한인사회의 최대 일간지가 있습니다. 남미동아일보입니다. 이 신문의 주말 판, ‘주간교포’에 저희 내외의 파라과이선교서신이 지난해 4월 첫 주부터 (2018년, 4월 7일) 올해 2월 9일까지 계속 연재되었습니다. 한 선교사의 개인 선교서신이 교민신문에 연속 게재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서 지금은 ‘성경은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인가?—성경의 정경사’란 제목으로 15회 예정으로 계속 연재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꿈은 이루어 진다!!’ 파라과이 선교사들의 이스라엘 성지순례의 꿈!

저희 내외는 3년 9개월 전 처음으로 파라과이에 정착하면서 지구반대편, 한국에서 가장 먼 대륙에 떨어져서 선교하는 파라과이 선교사들은 어떻게 생활하는지 궁금하였습니다. 20년, 30년 이상 이 열악한 땅에서 선교하고 있는 선임선교사들과 교제하면서 새삼스럽게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이 분들 대다수가 성지순례를 못 가셨다는 것입니다. “한번도 못 갔어요. 꿈도 못 꾸어 봤어요.” “이곳 남미에서 성지순례를 꿈꾸는 것 자체가 사치입니다.” 10명, 20명의 선교사들의 한결 같은 고백이었습니다. 이런 실상을 알고 난 후 저의 가슴에는 ‘큰 부담감’이 계속되었습니다.

저는 20년 전 영국에서 (IMF의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경험하면서), 40대의 늦깎이 유학생으로 하루하루 버티기 힘든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하였던 기억이 새롭게 떠올랐습니다. 그 단 한번의 그 성지순례가 영적으로 얼마나 크나 큰 유익이 되었던지요! 새벽기도 시간마다, 성령님은 제 심령에 ‘큰 의무감’을 주셨습니다. “파라과이 선교사들이 어찌하든지 성지순례를 할 수 있게 네가 먼저 시작해라” 수 차례의 망설임 끝에 2018년 1월, 처음으로 파라과이 선교사 월례모임에서 이런 마음의 부담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대부분 성지순례를 한 번도 못간 선교사들은 ‘이스라엘 성지순례추진위원회’를 곧바로 구성하게 되었고, 제가 자연스럽게 (?) 추진위원장의 총대를 메게 되었습니다. 제일 먼저 성지순례일정을 확정하였습니다. 각자의 선교사역에 가장 지장이 없는 일정으로 성지순례 일정: 2019년 5월 6일(화) – 15일(수)로 확정하였습니다.

만만치 않은 성지순례 비용을 믿음으로 감수하며 현재까지 참가 신청한 선교사는 총 15명. 왕복항공비는 개인이 부담하기로 하고, 나머지 이스라엘에서 숙식비 일체와 이스라엘 현장에서의 공동여행비(약 2만불)은, 선한 손길의 모금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현재까지 모금액은 약8,200불 입니다. ‘주여, 출발전까지 2만불을 채워주소서!’

2019학년 파라과이장로교 신학교 개강수련회 (3월 5일(화) – 7일(목))

건강한 영성 목회자, 서정호 목사님의 ‘하늘이 차려준 밥상’ 말씀잔치의 감동!

파라과이 장로교 신학교 매년 학기 초에 갖는 개강수련회는 한국이나 미국에서 강사님을 초청해서 진행합니다. 금년에는 한국교회 목회자 들에게 널리 영성 목회자로 알려진 서정호 목사님(영암교회)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저는 늦게 신학공부를 하면서, 계속 영성(Spirituality)에 지대한 관심으로 갖고서 영성의 대가들의 책과 학자, 목회자를 찾아서 벤치마킹을 하는데 전력투구하였습니다. 서정호 목사님은 오래전부터 주목하며 그가 쓴 영성에 관한 글을 읽어왔습니다. 그런 저에게 이번 개강수련회는 하나님께서차려 주신 ‘하늘 밥상’이었습니다. 은쟁반에 금사과와 같은 영성의 말씀을 간략히 소개합니다:

  • 이 세상을 ‘숙제하는 인생’을 살지말고, ‘축제하는 인생’으로 기쁘게 살아가라!

  • 이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감동하는 사람들, 감동하게 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선교사역을 감동으로 감당하라. 하나님 보시기에 예쁜 짓을 하라. 하나님을 미소 짓게 하라!

  • 은혜에 사로잡혀 사는 인생이 되라. 은혜는 찾아 나서서 찾는 그런 것이 아니다. 쌓여 있는 것을 내 것으로 취하는 것이다. 은혜에는 각도/위치/지점/관점이 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은혜의 각도로 보신다.

  • 만남은 하늘이 내리신 선물이다. 삶 자체가 선물이다. 매일 새벽시간에 하나님은 선물을 주신다. 새벽을 설레임으로 맞으라. 감동, 감격하며 맞으라! 오늘의 삶은 선물이다. 황홀하게 화답하라!

  • 우리가 영적으로 자는 동안은 영혼은 성장하지 않는다. 영혼은 깨어나야 성장한다. 애벌레는 작은 가지 앞에서도 원망 불평한다. 나비가 되어 날개를 달게 되면, 이 세상을 훨훨 날아다닌다. 풍요롭다. 아름답다.

한국, 영국, 파라과이에 걸쳐 국제적인 가족. 말씀사랑! 예배사랑! 새벽사랑!

제 두 아들, 며느리들과 손자 손녀들에게 항상 하는 말이 있습니다. “너희들도 나처럼 새벽을 특별나게 사랑하는 자가 되길 간절히 소원한다” “새벽시간은 하나님의 시간이다. 하나님이 새 창조하시는 시간이다”.. 잔소리로 듣지 않고 잘 실천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온가족이 시편 119편 암송을 도전하고 있는 런던 큰아들 가족, 바쁜 전도사 학업과 사역을 감당하고, 뒤에서는 내조하며 3자녀를 예쁘게 매일 예배와 말씀으로 키우는 목포 작은아들 가족에게 사랑을 전합니다.

파라과이 아순시온에서

배안호.박옥산 선교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