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과이 선교서신 제10신

영국 스코틀랜드 방문 특집서신

선교서신파라과이

5/10/20171 min read

영국 방문 특별 서신

이번 선교서신은 지난 3월 30(목)일부터 4월 19일(수) 까지 영국과 스코틀랜드를 3주간 방문한 이야기를 선교서신의 광주리에 담아보았습니다. 영국/스코틀랜드는 우리 가족의 제2의 고향입니다. 국가적으로 IMF의 경제위기를 맞았을 때 우리 가족은 스코틀랜드 아버딘(Aberdeen)에서 유학중이었기에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우리는 가장 큰 하나님의 은혜를 듬뿍 누리며, 수 많은 기도응답의 간증이 풍성한 때이기도 하였습니다. 거짓말 같은 일들이 얼마나 많았는지요! 영국 런던에 사는 큰아들 가족과 3주간 지내면서 그 중에 8일은 그런 기적을 가장 많이 체험하였던 우리 가족의 성지와 같은 스코틀랜드를 방문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번 서신은 ‘영국방문 특집의 선교서신’임을 먼저 밝힙니다.

스코틀랜드의 새벽기도운동과 우리 가족

긴 겨울을 지나고 부활절이 올 무렵 스코틀랜드의 봄은 수선화가 피기 시작하면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가 아버딘 공항에 도착하여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어버딘의 명물, 동해(북해:North Sea)안에 펼쳐진 아버딘 해변 이었습니다. 1996년 9월에 아버딘대학교원의 석사과정 (MTh)에 공부하기 위해서 도착했을 때가 생각났습니다. 그당시 우리 가족은 도착한 그 다음날부터 아버딘한인교회가 빌려서 예배를 드린다는 그 영국교회 빌딩에서 새벽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당시에 한인교회에서는 새벽기도가 없었습니다. 우리 가족이 새벽기도를 한다는 소문을 듣고 1-2가정씩 합류하게 되었고 3개월후에는 한인교회의 거의 1/3정도가 새벽기도에 참여하게 되자 결국 한인교회의 공식적인 새벽기도로 정착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새벽기도는 정확하게 1년후에는 ‘스코틀랜드 전역에 새벽기도운동’으로 확대되었던 것입니다! (1998년 6월 3일자 기독신문 참조: https://www.kidok.com/news/articleView.html?idxno=27865 )

당시에 나는 아버딘 도심의 유니온 가(Union Street)를 걸으면서 잠언의 이 말씀을 기억하였습니다. “내가 증왕의 게으른 자의 밭과 지혜없는 자의 포도원을 지나며 본즉, 가시덤불이 퍼졌으며, 거친 풀이 지면에 덮였고, 돌담이 무너졌기로, 내가 보고 생각이 깊었고, 내가 보고 훈계를 받았었노라” (잠24:30-32) 장로교의 발생지인 스코틀랜드에서 많은 교회 건물들이 폐허가 되고 더러는 술집으로 변하는 그 모습을 잠언 기자는 정확하게 적시하고 있었습니다. 가시덤불/거친풀/무너진 돌담의 모습을 보면서 눈물이 저절로 흘렀습니다. 당시 이런 부담을 새벽기도에 중요한 기도제목으로 삼았습니다.

‘멕첸성경일기’의 주인공, 로버트 맥체인 목사님의 베드로 교회 방문

이번 스콧틀랜드의 방문에서 내심으로 방문하고 싶었던 곳은 역시 던디(Dundee) 에 있는 로버트 맥체인 (Robert Murray McCheyne 1813-1843)이 30세에 죽기 직전까지 심혈을 기울여서 목회하며 성도들에게 ‘체계적인 성경읽기’를 강조하였던 성베드로 교회(St. Peter’s Church)였습니다. 필자는 일찍이 로버트 맥체인 목사님이 얼마나 스코틀랜드 교회사에서 영향력있는 인물이었는지를 아버딘에서 유학을 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유학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매일 아침, 맥체인 성경읽기를 지금까지 계속21년째 큐티묵상 본문 말씀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매년 구약 1번, 신약은 2번을 읽도록 되어있는 맥체인 성경읽기는 매일 읽는 그 날자마다 엄청난 메시지를 신.구약이 서로 연결되는 하모니를 이루고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맥체인 성경읽기는 좋은 성경읽기 프로그램 중의 하나이다’는 것을 사실로만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이 얼마나 기가막하게, 또 절묘하게 신.구약의 말씀의 상호 조화와 강력한 메시지 폭포수 처럼 담겨있는지는 모르는 듯 합니다.

이번에 던디의 베드로 교회 교회을 방문하였을 때, 담임을 맡고 있는 데이빗 목사님은 맥체인 목사님의 삶과 사역을 다룬 책을 내게 선물하였습니다. (David Robertson, “Awakening”, 2004). 나는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가장 궁금하였던 질물은 하였습니다. “목사님, 지금 이 교회에서는 맥체인 성경읽기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나요?” 놀랍게도 그의 대답은 “노” 였습니다. 등잔밑이 어둡다는 말이 맞는 것이었습니다. “주여 앞으로 수년내에 이 맥체인 성경읽기의 풍성한 영적인 보화를 먼저 한국교회에 잘 소개할 수 있게 도와 주시옵소서! 아멘 아멘”

네스호수의 박물관 방문, 두 손자들이 환호성소리!

아직도 어린 준수, 준오 두 손자의 최대의 관심사는 공룡이 나온다는 하이랜드의 그 유명한 ‘Loch Ness 호수’ 공룡박물관을 방문할 때이었습니다. “우와! 할아버지! 공룡이 어디있어?” 역시 어린이이 모든 것이 호기심 투성이었습니다. “주여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비밀이신 예수님을 더 깊이 알아고자하는 호기심을 저희의 심령에 허락하여 주옵소서”

영적 불모지, 하이랜드를 지키는 Ross & Amy 가정 방문

이버딘 대학교에서 같이 석사학위 공부하면서 우정을 나누었던 Ross & Amy 부부를 인버네스 딩월(Dingwall)에서 20년 만에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그 당시까지 어린 딸만 셋이었는데, 그 후에 아들 둘을 더 낳아서 이제는 5남매가 모두 청년들이 되어있었습니다. 철저한 기독교 세계관에 의해서 다섯 아이들을 모두 홈스쿨링으로 키워서 모두가 휼룽하게 성장하여 스코틀랜드의 최고의 명문대학교에 당당하게 합격한 대학생이 되어있었습니다. Ross 목사는 주일이면 2-3교회를 다니면서 설교하며 고국분투 쇠퇴하는 교회를 목양하고 있었습니다. 주일예배를 드리기기 위해서 2-3시간을 먼 길을 달려서 오반(Oban)이라는 도시의 한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주여 스코틀랜드 교회를 살려 주시옵소서! 한국과 전 세계의 장로교회의 발상지인 스코틀랜드교회가 아제는 거의 힘을 잃고 허우적 거리는 모습임을 하감하옵소서!”

존로스 (John Ross) 선교사를 파송하였던 역사적인 교회는 철공장이 되었고…

한국교회의 최고의 은인인 (필자는 박사논문 주제로 바로 한국교회의 형성기의 존 로스의 선교방법론을 집중적으로 연구하였습니다) 존로스의 고향교회와 그의 성장한 해변가의 마을들을 다시금 둘러보았습니다. 로스 선교사를 전공하면서 5년여간 수 십 번을 방문하였던 그곳을 이번에도 잊지않고 찾아갔던 것입니다. 오호 통재라! 역사적인 바로 그 교회, 존 로스를 파송하였던 교회는 이미 문을 닫았던 (필자의 논문 쓸 당시에 마지막 예배를 드렸다) 그 교회가 궁금하였기에 비가오는 날에 물어 물어 찾아갔습니다. 아뿔사! 그 교회는 그 후 어느 철공장 업자에게 팔리게 되었고, 지금은 교회당 안 이곳 저곳에 철공장 자재들이 먼지를 뒤집어 쓰고있었습니다. 그 당시에 필자에게도 여러 차례 그 “교회의 강대상 만이라도 한국교회에서 구입해 주세요”고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한국교회의 교단 총회관계자에게 “존 로스를 파송할때 사용하던 교회의 강대상만이라도 구입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여러 번 요구를 하였지만, 아무도 관심도 없었던 것을 보면서 크게 실망하였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 후에 강대상을 한국으로 가져가 현재 서울 새문안교회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주여, 이번에 스코틀랜드와 아비딘대학을 둘러보면서 다시 확인하는 것이 한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도, 학위도, 건물도 교회까지도 다 지나가는 것이요,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요한1서 2:17) 이 말씀을 기억하며 선교현장에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행하는 저희부부가 되게 하옵소서! 아멘 아멘”

파라과이 아순시온에서

배안호.박옥산 선교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