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리만자로 등산 후기

아프리카의 지붕, 킬리만자로산 정상에서 기도!

후기

8/10/20161 min read

I. 들어가는 말

금수강산(錦繡江山), 산고수려(山高水麗)의 나라, 우리 대한민국이다. 그리 크지 않는 나라, 크고 작은 산들로 구성된 조국의 강산이기에 한국인은 대체로 산을 좋아한다. 조국에 살 때는 별로 못 느끼게 되지만, 해외에서 살면서 주위에 산에 없으면 허전하고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것은 한국인은 무언(無言)중에 산을 의지하는 마음이 있는듯하다.

나의 어린 시절에는 첩첩산중, 산으로 둘러싸인 산동네에서 태어나서 그곳에서 유초등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 입학하기도 전에 나는 내 눈에 집채같이 큰 황소를 몰고 소풀먹이기 위해서 매일 앞산과 뒷산을 올랐다. 좀 더 커서는 산에서 땔깜 나무를 하기위해서 지게를 지고 산에 올랐다. 이른 아침에 눈만 뜨면 저 서남쪽으로 머얼리에 가야산(1,430m) 정상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러기에 산을 보면 당연히 오르고 싶었다. 그 꼭대기에는 무엇이 있는지 궁금하였고 기필코 정상에 서고야 말았다.

그래서 지금까지 한국의 중요한 산들을 즐겨 등산하였다. 그런데, 한국의 대표적인 한라산과 백두산은 아프리카의 지붕인 킬리만자로산 정상에 오른 후에야 설 수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등산 순서가 뒤바뀌게 되었는지가 이 글의 대체적인 줄거리가 될 것이다.

II. 성경의 모든 축복스러운 사건은 산에서 이루어졌다.

성경에는 유난히도 산이 많이 등장한다. 노아는 아라랏산에서 방주가 머무는 것을 보았다. 아브라함은 모리아산에서 제사를 드렸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았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를 이겼다. 기드온은 길르앗산에서 정병 300명을 뽑았다. 예수님은 팔복에 관한 일련의 설교를 산위에서 하셨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변화산에서 예수님의 놀라운 변화하신 모습을 보았다. 주님은 가이샤라 빌립보 지방의 유명한 산에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받내 내셨고, 또한 갈보리산에서 십자가를 지시고 운명하셨고, 감란산에서 모든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승천하셨다.

제 아내와 나는 2002년 10월에 아프리키의 지붕, 킬리만자로 산이 있는 탄자니아에 첫발을 디뎠다. 케냐를 거쳐서 탄자니아로 날아올 때는 ‘지금 우리 비행기는 킬리만자로 산을 통과중’이라는 안내 방송도 하였다. 스와힐리어 현지 어학연수를 하면서도 교재에 킬리만자로 산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였다.

호기심이 많은 나는 동료 선임선교사들에게 혹시 킬리만자로 산에 등산해 본적이 있느냐고 여러 번 질문을 하였다. ‘킬리만자로 산에 누구 누가가 오르다가 반신불수가 되었다’, ‘어떤 한국선교사는 킬리만자로산을 만만히 보고 오르다가 들것에 실려서 내려 왔다’, ‘또 누구는 정상 근처까지 등산을 했지만 그곳은 너무 추워서 하산하였다’, 또한 ‘누구는 가족과 함께 올라가다가 그 중에 1명은 죽었다고 하드라’ 등등 모두가 부정적인 답변 뿐이었다.

칼빈신학교의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면서 질문을 하였다. 킬리만자로산 정상의 눈이 정말 눈인가? 눈을 본 사람이 있는가? 이들의 대답은 역시 킬리만자로산은 절대 만만한 산이 아니다. 등산은 전문 산악인이 해야 한다. 매우 위험하기에 등산은 불가능하다. 등등.

III. 탄자니아, 신학생들에게 꿈을 제시하고 킬리만자로산 등산을 결심하다.

동료팀의 선교사들과 함께 킬리만자로산 근처에서 총회모임을 갖기도 하였다. 해발 6,000m (정확하게 5,895m) 정상중에서 2,000 지점까지는 자동차로 쉽게 오를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2년째 되는 해에 영국의 대학교에서 다니던 두 아들(쌍둥이)이 여름방학을 맞아서 탄자니아에 찾아 왔다. 우리 가족은 아들들과 함께 가족여행을 했다. 킬리만자로 산을 해발 2,000m 지점에서 아들들에게 내년, 이맘때 너희들이 다시 올 때는 ‘저 높은 눈으로 덮힌 정상을 반드시 등산할 것이다’ 고 목표를 제시하였다. 그러니 1년 동안 부단하게 체력단련을 단단히 할 것을 당부하여서 다시 영국으로 돌아갔다.

내가 킬리만자로산을 정상에 등산하기로 작정한 것은 탄자니아의 신학생들의 ‘숙명주의’/‘패배주이’/열등감‘을 깨트리고 ’우리도 할 수 있다.‘ ’기도하고 나아가면 새벽의 하나님이 도와 주신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작은 칼빈신학교의 교장으로서 교수사역을 하면서 점점 더 확실하게 깨닫게 되는 것은 뿌리 깊은 열등감과 숙명주의에 물들어 있는 것이었다. 거대한 장벽같이 느껴졌다. 매일 전교생 100%출석하는 새벽기도을 학기중에 계속하였다. 매일 새벽기도시간에 멕첸성경읽기를 함께 함께 성경을 읽고 태권도 가르쳤다.

IV. 드디어 킬리만자로산 정상(5,895m)에 우뚝 서다. 새벽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2004년 여름방학을 맞아서 아들들이 다시 탄자니아에 돌아왔다. 1년 전에 제시한 사항대로 이들은 최선을 다해서 운동하고,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아서 가족등산 장비를 철저히 준비하였다. 킬리만자로산 등산 루트가 7개가 있다는 것도 젋은세대 답게 사전에 확인해 두었다. 7개의 등산 루트 중에서 가장 험난한 코스로 아들들이 하는 것이 좋겠다고 우리를 설득하였다. 바로 우리는 탄자니아 현지 셀파들과 함께 등산을 시작.. (더욱더 우리를 고무시켰던 것은 이들이 학교당국에 여름방학 때에 킬리만자로산을 등산할 계획이라고 했을 때, 세계의 유명산을 등산하게 되면 학교에서 그 비용의 대부분을 후원한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 역시 세계적인 유명 대학(케임브리지)은 이러 면에서도 학생들에게 호연지기(浩然之氣) 키우는 계기로 삼게 됨을 알게 되었다.)

해발 2,500m 지점에서부터 고산증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3일째 3,500m지점, 아내와 둘째 아들은 구토를 심하게 시작하였다. 그러나 계속 기도하면서 우리일행은 4,000m 지점에 도착하였다. 아내는 점점 힘들어 하였고 체질이 비슷한 둘째도 숨이 가빠지기 시작, 4일째, 4,500m 지점에서 아내와 둘째아들은 셀파 2명과 함께 하산. 5,000m 지점에서는 2아들들과 함께 따라온, 케임브르지 법대생(홍콩인)은 더 이상 못 견디겠다면서 또 하산! 이제 큰아들과 단둘이 셀파 2명과 함께 묵묵히 등산을 계속! 5,400m 지점에서 5일째 마지막 밤 자정에 일어나서 등산하는 마지막 코스! 날씨는 점점 기온이 떨어지고 바람이 더 세차게 불기 시작! 5,600m 지점에서는 내 뒤를 묵묵히 따라오던 큰아들의 입에서 ‘아빠 도저히 너무 힘드니, 이제 내려갑시다’라는 말이 나오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나중에 정상에 다녀온 후에서야 큰아들도, ‘아빠가 먼저 아들아 이제 내려가자!’고 말씀해 주기를 간절히 바랐다고 하였다. 그러니까 부자(夫子)지간의 자존심 대결을 했던 것이었다. 이제 급경사지역! 2발을 내딛고 오르면 3발자국 미끄러지는 지역이다. 이제는 체력이 완전히 바닥이 났다. 벌써 어떤 젊은이들은 정상에 갔다가 환성을 지르면서 하산을 하는 자들이 눈에 띄었다.

킬리만자로 9부 능선에서 만난 새벽의 하나님의 하나님!

때마침, 넓은 바위가 있어서 그냥 털석 주저 앉았다. 물통의 물이 다 얼어서 간신 몇 모금을 마실 수 있었다. 때마침, 저 머얼리 수평선 너머, 인도양바다에서 뭐가 밝은 구름이 보였다. 시계를 보았다. 새벽 4시! ‘아! 새벽이구나! 이 시간은 새벽기도를 가기위해서 일어나는 시간이 아닌가!’. 전세계에서 나를 기억하면서 ‘새벽에 기도할 얼굴들’이 떠 올랐다. ‘배안호 선교사가 아프카에 선교하러 갔다가 동상에 걸려서 귀국하였다’소문이 들렸다. 여기 저기서 조롱하며 빈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또한 기도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아들아, 여기서 우리가 부르짖고 기도하자!’ 소리높여 기도하였다. 내가 소리를 높여 기도하니까 아들도 뒤질세라, 소리를 높였다. 부지지간의 그 깊은 킬리만자로산 9부 능선에서 부르짖는 산기도를 한 것이다. ‘주여 새힘을 주시옵소서! 여기 등산하는 목적이 아프리카 젊은이, 특히 신학생들에게 꿈과 소망, 반드시 하나님이 도우신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여기까지 왔는데..동상이 걸려서 내려가게 되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게 되고, 선교사의 이름이 욕을 먹게 됩니다. 그럴 수는 없지 않습니까? 주여 도와주시옵소서!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응답하옵소서! 새 힘을 주시옵소서!’ 얼마나 통곡하며 우리 부자가 기도를 하였든지.. 눈물과 땀 범벅이 되어 흐르기 시작하였다. 20분 정도 기도하였는데 온몸에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양말을 3켤레나 신었지만 발이 시려서 결딜 수 없었는데.. 발끝에서부터 후끈 후끈 열이 전달되었다. 분명히 기적이다. 새 힘이 넘쳐났다. 그리고 단숨에 20-30m을 치고 올라갔다. 또 하산하는 어떤 카나다 대학생을 만났다. ‘정상이 얼마나 남았느냐’고 물었다. ‘바로, 저 위입니다’(just over there), ‘조금만 더 가면 되요’. 그 소리를 말 그대로 믿고 죽을 힘을 다해서 그 그곳에 도착해 보니 아직도 300m 이상이나 남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등산에서는 힘들게 등산하는 동료들에게 언제나 그렇게 격려한다는 것을 후에서 알게 되었다. 아뭏튼지 그 ‘카나다 학생천사들’의 말에 힘입어서 정상(5,895m)까지 무난히 다다를 수 있었다.

V. 나가는 말; 우후르 정상(5,895m)에서 기도

정상에서 미리 준비해 간 태극기를 달았다. 눈물과 감격이었다. 아프리카의 지붕이 맞았다. 아프리카 57개국 7억5천만의 영혼을 위해서 두손을 높이 들고 기도하였다. 워낙 늦게 정상에 도착하였기에 셀파와 우리 3명 뿐이었다. 정상에 두팔을 벌리고 한바뀌를 돌면서 아프리카의 각 민족 각 족속을 생각하며 기도하였다.

정상에서 확인한 것 3가지; 킬리만자로에는 표범이 없다 것, ‘정상의 덮인 눈’은 절대로 눈이 아니고 얼음이며, 등반(登攀)은 동반(同伴)이며, 결코 혼자 오른 것이 아니라, 셀파와 큰아들이 동행한 것처럼, 임마누엘 하나님이 함께 동반해 주셨다는 것이다.

도전은 변신의 과정이다. 도전을 사작할 때의 나와 도전을 마칠 때의 나는 이미 질적으로 다르다. 킬리만자로 등산루트중 최고로 힘든 루트( ? )를 택해서 우후르 정상에 선자는 적어도 탄자니아의 선교사들 중에 최초의 등산 기록이었다. 이후로 수많은 선교사들이 등산에 도전하게 되었다. 그후 칼빈신학교 채플시간에 제자들에게 귀가 닳토록 선언하였다. ‘하나님 안에서 꿈을 가져라! 도전하라! 운명주의 패배주의 약자의 변명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선한 동기와 목적을 갖고 도전하는 자들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반드시 하나님이 함께하신다.

이렇게 킬리만자로 산을 오른후에 안식년을 맞아 고국에 돌아오며 비행기에 킬리만자산을 바라보았다. 그전에 보았던 동일한 산인데도 분명히 달라보였다. 내 고향의 어느 산처럼 느껴쪘다. 하나님이 말씀 하신다. ‘사랑하는 종아! 그런데, 너는 킬리만자로를 오르면서 네 조국의 한라산, 백두산을 올라보았느냐?’ 안식년 중에 제일먼저 한라산 정상에 올랐다. 백두산에 오를때는 우리 동기 목사님 중에서 북한선교사로서 늘 조국을 끌어앉고 눈물로 기도하는 K 목사님과 함께 올랐다. ‘주여 우리 민족의 남과 북이 복음안에서 속히 통일을 주옵소서! 아멘 아멘.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