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금강산 마라톤대회 완주 후기
제2회(2002년 2월 23일) 내 생애의 ‘국제금강산 마라톤대회’의 완주의 감격과 눈물
후기
7/27/20161 min read


I. 나는 모든 운동을 좋아한다.
나는 모든 운동을 좋아한다. 단순히 T V로 스포츠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손과 발로 직접 스포츠 현장에서 땀을 흘리며 시합이나 게임을 즐기는 것을 나는 더 좋아한다. 조깅, 베드민턴, 축구, 배구, 탁구, 등등이다. 이즘에는 테니스와 수영을 열심히 배우고 있다.
나는 특히 조깅과 마라톤을 좋아한다. 나의 조깅의 역사는 40년 이상이 되었다. 20대 초반의 군대생활을 할 때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글을 쓸 예정이다.
II. 우리 가족의 금의환향(錦衣還鄕)과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별세
2002년에 나와 내 아내(Ester) 동부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GMS의 파송선교사로 가게 되었다. 나는 2002년 1월 초에 영국 스콧틀란드에서 석.박사 학위 공부를 성공적으로 끝내고 가족과 함께 고국에 귀국하였다. 부모님은 오랜만에 만난 큰 아들의 박사학위 취득과 2 쌍둥이 손자들이 좋은 대학교(케임브리지 대학교) 입학하였다고 대단히 기뻐하셨다.
특히 아버지께서는 더욱 더 두 손자들이 세계적인 대학에 합격한 것을 매우 자랑스러워 하셨다. 그렇지만, 야속하게도 아버지께서는 그런 기쁨을 누리시는 것도 잠시뿐이었다. 아버지는 어느날 몸이 아프셨고, 입원해서 몇 주도 안되어서 갑자기 별세하셨다. (1월 28일)
뜻밖의 아버지를 잃은 충격은 너무나도 컸다. 믿어지지 않았다. 아버지께 불효한 것이 많아서 눈물이 앞을 가렸다.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는 난 후에 우연히 옛날 신문을 읽는 중에 북한 땅에서 개최하는 ‘금강산 마라톤 대회’가 곧 개최된다는 뉴스를 읽었다.
III. 일생에 처음으로 ‘금강산 마라톤 대회’에 참석하여 완주하다.
나는 그 당시에 탄자니아에 선교사로 파송받기 위하여 기도하며 준비하는 중이었다. 아프리카에 가게 되면 또 언제 고국에 올 것인지..특히 북한 동포들을 위해서 새벽마다 기도하였다. 새벽시간에 북한을 위해서 기도하던 중에 아프리카에 떠나기 전에 꼭 북한에 들어가서 ‘땅 밟기’를 하고 싶었다. ‘하나님, 북한에 가서 그 땅을 밟으면서 기도하고 싶어요’.
이미 제2회 국제금강산 마라톤대회는 이미 마감한지 오래 되었다. 전화로 대회 담당자에 여러 번이나 참석여부를 문의하였다. 이미 등록 마감을 하였기에 이제는 참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북한에서 열리는 대회이기에 미리 신원조회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불가능 한 것에 더 집요하게 도전하는 것을 즐기며 인생을 살아왔다. 거듭 전화로 마라톤 대회의 최고의 담당자에 전화를 바꾸어 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는 처음부터 왜 직원을 괴롭히느냐고 항의하였다. 나는 내가 반드시 북한에 가서 그 마라톤에 참석해야 할 3대 이유가 있다고 하였다.
그는 그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나는 당당하게 3대 이유는; 첫째 민간 외교관으로 아프리카에 가는데, 조국을 떠나기 전에 내 조국 북한 땅에 들어가서 북한의 실상과 아픔을 뛰면서 느끼기를 원한다. 둘째, 영국에 7년간 유학생활 중에도 조국을 위해서 매일 기도하였는데 이제 조국을 떠나기에 더 생생하게 기도해야 하겠기에 이번 마라톤대회에 반드시 참석해합니다...여기까지 힘있게 전화상으로 설득하는데, 그는 3번째는 안 들어도 나를 도와주겠다고 하였다. 그는 자기도 교회에 다닌다고 하면서 그날 북한으로 출발하는 날 좀 더 일찍 나와서 자기를 만나면 반드시 함께 가서 북한에서 땅밟기를 하게 도와주겠다고 하였다.
이렇게 억지로 금강산 마라톤에 참가자격을 획득하였지만, 몇 일이 못되어서 또 변수가 일어 났다. 곧, 미국의 대통령, George W. Bush이 그의 새해 연두기자회견(State of the Union Address)을 하면서 북한을 이라크와 이란과 함께 '악의 축(an axis of evil)'이라고 연설을 하였던 것이다. 이로 인해서 북한은 매우 분노하였고 남.북관계는 다시 초긴장 상태가 되게 되었다. 북한에서 금강산 마라톤 대회도 열리지 못할 것이라는 뉴스도 나오게 되었다. 그후에 금강산 관광과 마라톤대회는 정상적으로 진행되게 되었다. 이로 인해서 수 많은 마라토너들이 마라톤신청을 포기하게 되었다.
그 대회는 2가지 종목 중에서 선택하도록 되어있었다. 10km 혹은 하프코스; 나는 당연히 하프코스를 선택하였다. 내 생애에 처음으로 마라톤대회에 참석할 경우라련 10km를 해야 한다고 대회사무국에서 설득하였으나 나는 평소에 조깅을 30년 정도 하였기에 충분히 하프를 뛸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대회 본부측에서는 나에게 시각 쟁애자 마라토너들이 함께 참석하는데 3-4명의 시각장애인 마라토너와 같이 뛰어 달라고 하였다. 북한의 고성항구-삼일포-온천장의 하프코스는 생후 처음으로 아무런 연습도 없이 뛰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였다. 아직도 하프의 하프 곧, 반환점을 돌기 전에 이미 체력의 한계를 느끼며 다리가 무거워지기 시작하였다. 시각장애 마라토너들은 이미 완전 초보자인 나의 마라톤 실력을 간파하고 일찍이 자기들끼리 먼저 뛰어 갈터이니, 천천히 뛰어 오라고 하면서 앞서서 질주하였다.
삼일포에서 반환점을 돌아서 머얼리 세계적인 금강산을 바라보면서 뛰는 것은 감격 그 자체였다. 모든 언론 매체의 카메라맨들은 나에게 연신 카메라의 앵글을 맞추었다. 북한의 민낮을 모두 구경하면서 뛰었다. 경찰서, 군부대, 초등학교 앞도 지나쳤다. 그러나 다리는 점점 무거워지고 내 몸무게는 한 없이 늘어나는 것 같았다. ‘뛰다가 죽더라도 걷지는 않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절규하는 기도를 드렸다. ‘오주여 도와주시옵소서’ 드디어 골인 지점에 도착할 때는 내가 마치 마라톤의 우승자처럼 모든 카메라맨의 집중 취재대상이 되었다.
IV. ‘마라톤은 인생이다.’ ‘마라톤은 땅 밟기이다.’ ‘마라톤은 곧 기도이다’
이것이 나의 최초의 마라톤 완주기이다. 왜 사람들이 ‘인생은 마라톤이라’고 하는지를 이제 알게 되었다. 마라톤은 또한 기도이다. 땅 밟기이다. 기도 없이도 얼마든지 자신의 능력으로 수 100회의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말하는 ‘마라톤이 곧 기도’라는 뜻은, 창세기에서 롯이 떠난 후 아브람이 밟는 땅을 ‘네게 주리라’ (창13:17)늘 말씀이 마라톤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을 확실히 믿는 믿음의 선포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