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레아 슐링크처럼
<바실레아 슐링크처럼> (국민북스, 2019)
서평
1/31/20221 min read
들어가기(서론): 국민북스 ‘한 달 묵상 시리즈2’
부제: ‘예’와 ‘아멘’의 사람 바실에아 슐링크와 함께하는 한 달. ‘바실레아 슐링크처럼 회개하며 겸손히 주님의 길을 걸어가자!’ ‘아, 주님의 말씀은 영원히 저에게 “예”와 “아멘”이십니다!’(책표지의 글) 이 책의 저자에 대해 잘 모르는 독자는 책의 겉표지의 사진을 보면서 ‘이 분은 가톨릭의 수녀인가?’, ‘독일교회 여성들의 기도공동체 이야기인가?’ 이러한 선입견(先入見)을 갖을 것같다. 그래서 ‘이런 책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수 있을까?’ 기대감 없이...
바실레아 슐링크(M. Basilea Schlink, 1904-2001)는 평생 하나님의 말씀에 ‘예와 아멘’으로 응답한 순종의 사람이다. 슐링크는 1904년 독일 다름슈타트에서 모태신앙인으로 태어났다. 18세에 구원의 체험을 한 이후 이 땅에서 천국을 미리 맛보는 삶을 추구했으며,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약속의 성취만을 위해 진력(盡力)했던 참 그리스도인이다. 1939년 함부르크대학에서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1947년 믿음의 동역자 에리카 마다우스(Erika Madauss)와 함께 2차 세계대전의 큰 진통과 풍랑속에서 철저한 회개와 기도를 통해 독일 다륨슈타트에 개신교 회개공동체인 기독교마리아자매회(Evangelcial Sisterhood of Mary)를 창설했다.
바실레아 슐링크는 세계대전시대에 선지자적인 경고/복음전파사역/문서사역/방송선교/문화사역/믿음의 공동체(중보기도)사역/이스라엘선교사역 등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생명과 사랑을 전했다. 그가 평생 저술한 100권의 책은 현재 약 60개국 언어로 번역되었다. 기독교마리아자매회에는 19개국에서 온 자매들이 믿음의 삶을 살고 있고 이스라엘 등 12개국에 지부가 설립되어 있다. 국민북스의 ‘한 달묵상 시리즈2’이다. <조지 뮬러처럼> ‘한 달 동안만이라도 <바실레아 슐링크처럼> 살아보자’는 뜻으로 출판된 작은 묵상책이다.
지난 주에 소개한 조지 뮬러 보다 100년 후에 태어난 바실레아 슐링크는 모두 독일 출생으로 장수의 복을 누렸다. 서평자는 이 두 기도의사람의 공통점을 생각해 보았다. 단순하고 순전한 사람, 심령이 깨끗하며 심지가 견고한 사람, 말씀에 붙들린 기도의 사람으로서 우리 모든 크리스천에게 멋진 신앙과 인생의 탁월한 믿음의 선배들이다.
본서의 묵상 중에서 ‘갈라진 틈에 서는 자가 되라’(Day 1), ‘거룩한 남은 자가 되라’(Day 2), ‘모리아의 경험을 하라’(Day 3), ‘어떤 댓가를 치르드라도 하나님을 갈망하라’(Day 16)와 [책속의 책] ‘바실레아 슐링크, 나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간단히 서평하고자 한다.
1. 갈라진 틈을 서는 자가 되라(Day 1)
“그러므로 내가 택함받은 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받게 하려 함이라” (디모데후서 2:10)
“지금 시대에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연합과 일치입니다. 이 말은 그만큼 세상에 분열이 만연되어 있다는 사실을 반증합니다. 특별히 주님의 몸된 교회 안에서도 분열은 심각한 상황입니다. 지금 주님의 몸 안에서 얼마나 많은 분열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그것은 비단 한 국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p. 14)
진정한 연합과 일치는 신학적 토론, 문서화된 교리가 아닌 무너진 데를 막어서는 사람이...
“진정한 일치는 오직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가능합니다.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에서 찾다가...”(겔22:30) 모든 견해의 차이를 뛰어넘어 이 땅에서 무너진 데를 막아서는 사람이 있어야 일치가 가능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화평을 심는 사람들입니다. 모세와 같이 갈라진 틈에 서는 자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통해 무너진 성이 새롭게 건축됩니다” (p. 15)
연합보다도 분열이 일상화된 오늘날의 기독교 진영의 모습...어제도 오늘도 동일!
“모든 의견 충돌의 근원은 인간의 마음 안에 있습니다. 고집스러울 정도로 자신의 관점과 견해에 매달리는 것이 인간의 보편적 경향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다툼과 헐뜯음, 그리고 모든 가식과 분열이 자라는 곳입니다. 부패하고 이기적인 마음을 죽이고 사랑과 화해의 성령으로 새 생명을 얻어야 일치가 이뤄집니다. 우리의 타락한 지성이 사라진 후에야 비로서 사랑이 승리의 개가를 드높일 것입니다. 사랑은 언제나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들끼리 하나가 되는 길을 찾아냅니다.” (p. 16)
—> 희한하게도 사랑과 진리를 생명처럼 강조하는 교회내의 분열과 갈등이 만연하다. 그러면 진정한 연합과 일치는 가능할것인가? 그 답은 우리의 타락한 지성이 사라지고 갈라지고 무너진 틈을 두발로 막아서는 중보기도자가 견고히 설 때에 가능함을 새삼스레 깨닫는다.
“오늘 이 땅에 화해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이 되도록 기도하십시오. 모든 갈라진 틈에 서서 사랑을 실천하십시오. 하나님이 그런 당신을 보며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라며 기뻐하실 것입니다” (p. 17)
2. 거룩한 남은 자가 되라(Day 2)
“시온에 남아 있는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안에 생존한 자 중 기록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니” (이사야 4:3)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 대부분이 멸망하게 되리라고 심판을 경고하실 때마다 성경에 함께 등장하는 한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남은 자’라는 단어입니다. “거룩하며 거룩하다 일컬음을 받을 남은 자들이 살아남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p. 18)
“거룩한 남은 자’란 이 단어는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성경을 읽다보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 혹은 이스라엘에 심판을 내리실때마다 항상 거룩한 남은 자들을 남겨두셨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대홍수 시대에는 노아와 그의 가족들을, 소돔에 심판을 내리실 때에는 롯을 남겨 두셨습니다. 또한 주위를 돌아보아 어떤한 의인도 발견할 수 없을 것 같은 패역한 세대에서도 거룩한 남은 자들이 있다고 말합니다” (p. 18)
—> 서평자는 이런 답답한 코로나 시대에 ‘거룩한 남은 자’를 참으로 많이 생각한다. 참으로 온갖 유혹과 핍박 환란중에도 우직하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남은자는 너무나 적은 것 같다. 그래서 성경을 읽을때마다 ‘그루터기’, ‘남은 자’란 단어가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유구한 교회역사를 생각해 보십시오.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여겨지던 시기마다 남은 자들을 통해 새로운 영적갱신과 각성이 일어났습니다. 무시무시한 재난이 지나간 후에는 어김없이 거룩한 남은 자들을 통해 뭔가가 새롭게 시작됐습니다... 거룩한 남은 자란 영적으로 강건한 자들의 무리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들은 견고한 기둥과 같습니다. 어떤 유혹과 핍박, 환란속에서도 굳건히 서 있습니다”. (p.19)
“이 패역한 시대에 거룩한 남은 자가 되기를 소망합시다. 최후승리 거둘 때까지 믿음의 경주를 다해 나갑시다. 오늘, 지금 이 시간에 그 경주를 시작합시다. “당신은 이 시대의 거룩한 남은 자입니까?” 이것이 오늘 당신이 답해야 할 결정적 질문입니다”. (p.20)
3. 모리아의 경험을 하라(Day 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창세기 22:2)
“크리스천들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시기는 회심할때도, 희생을 치를때도, 연단을 받을 때도 아닙니다. 바로 모리아의 경험을 할 때입니다”. (p. 22)
“지난 시절을 돌이켜보니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은 어려움을 가져다준 극심한 어둠의 순간에 하나님께선 사랑으로 순종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깊은 절망의 때마다 하나님의 사람을 여전히 신뢰한다는 표시로 나는 종종 기도하는 장소에 조약돌로 ‘예, 아멘’이라는 글자를 만들어 놓기도 했습니다... 오 주여! 당신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을


